Accept

We use cookies in order to save your preferences so we can provide a feature-rich, personalized website experience. We also use functionality from third-party vendors who may add additional cookies of their own (e.g. Analytics, Maps, Chat, etc). Read more about cookies in our Privacy Policy and Terms of Service. If you do not accept our use of Cookies, please do not use the website.

 

다인종 교회 비전 Why Multi-Ethnic?

Header Image

왜 다인종 교회입니까?

(그레이스 장로교회가 추구하는 다인종교회의 비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담임목사님이신 세다 목사님의 설교를 올려드립니다. 한국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의미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몇 군데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영문 본문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왜 우리 그레이스 교회는 다인종 교회가 되기를 추구하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다양한 인종들과 사회 계층의 사람들을 제자 삼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한 몸”이 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굳이 우리의 안전지대를 뛰쳐 나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왜 사람들이 다인종 교회를 추구하지 않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인종, 다계층 교회를 이루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것이 다만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인종 교회를 이루는 일은 긴급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앞으로 40여년 안에 백인들이 소수가 될 것이라는 이유를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에 영향을 받아 다인종 교회 이루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성경적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도 수 많은 다른 교회들처럼 주변 세상에 깊이 영향 받아 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공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세상의 방식을 따라왔습니다.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을 성경말씀에 맞추어감으로서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에서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의 안디옥 교회의 실제 예를 통해 영감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지도 받으며, 사도 요한의 비전에 이끌려갑니다.

 

예수님의 기도

요한복음 17장에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드리셨던 기도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당대의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2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내다보시며, 그가 택하신 사도들의 선포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될 이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레이스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21절과 23절에 반복해서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하나됨이 중요한 이유를 보십시오. 하나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더군다나, 이 하나됨은 다만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영적인 하나됨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됨의 목적은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분으로, 온 세상을 위한 구주로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곧 요한복음 3장16절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세상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확신시키는 길은 우리의 하나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것은 인종간의 하나됨입니다.

그러므로, 다인종 교회는 그 존재 자체로, 예수님만이 근본적이며 고통스러운 인종간의 분열을 뛰어 넘어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선포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모두를 한 몸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인종 교회는 이런 면에서 복음이 왜 필요한 가를 보여주는데 특별하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예

또한 다인종교회는 우리의 죄성에 물든 자연스러운 배타적 경향성을 끊어냅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과 무리짓고, 우리와 다른이들을 배척하곤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최초의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 조차,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8절에서 말씀하신 가르침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을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안전지대에 머물렀습니다.

이 상황 가운데, 환난과 핍박이 신자들을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조차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족에게로만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 11장1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몰아내시고 그들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밀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만 동족들과만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용기있게 예수님께 순종하는 소수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20절은 말합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당시 인종적 구분을 용기 있게 넘어선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신약성경 최초의 다인종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당연하게도, 신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그 교회는 처음으로 다인종 목회자들이 섬기는 교회였으며(행13:1-2),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안디옥의 다인종교회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선교사들을 유럽으로, 아시아로, 땅끝까지 파송했던 것입니다. 안디옥의 다인종 교회가 마침내 예수님의 기도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되게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우리가 모방할만한 것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우리의 모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운영하는데 있어, 의도적으로 단일인종 구성이 전제된 교회 운영원칙을 버리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본 받을 수 있는 예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셨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는 안디옥 교회이며, 그러므로 이 교회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모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

또한 안디옥 교회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은, 교회야말로 인종간 분열의 벽을 넘는, 예수님의 화해시키시는 사랑을 보여주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고 강력하게 가르쳐줍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초대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될 수 있으며, 서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열방 가운데로 보냄을 받습니다. 그는 도시와 도시를 다니며, 인종간을 넘나 들었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실제로 살아낼 수 있는 지역 교회로 모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다인종 교회를, 다만 세워 놓은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새로 세워진 교회들에서 꽤 많은 시간을 가르쳤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편지로 가르침을 주었고, 이 편지들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인종간의 화합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러한 주제가 가장 선명히 드러나 있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그가 “복음의 비밀”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근본적인 인종간 분리는 유대인과 이방인(비유대인)의 분리였습니다. 이 분리는 여러 측면에서, 모든 종류의 인종간 분리의 원형이며, 바울이 “복음의 비밀”에 대해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분리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3장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비밀)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바울의 시대에 이 말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울이 쓴 내용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바울이 “비밀”이라고 말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을 다른 모든 민족과 분리시키셨기 때문입니다. 2000여년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교만해졌고 다른 민족들을 무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러하므로, 이방인들도 같은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안에 한정되고,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분의 독생자를 주사,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은 누구든, 인종이 어떠하든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된다는 개념에 완전히 반기를 들었고, 바울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 폭력으로 반응한 이야기가 사도행전 22장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옥에 갇혀 있을 때 에베소서를 씁니다. 이 편지의 말미에 바울은 이렇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놀라운 것은 바울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복음의 비밀”을 전파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 분리의 벽이 무너졌다고 가르쳤고,  이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역시 바울의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의 비밀'에 대한 깊은 반감이 존재합니다. 비록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폭력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늘날 교회를 보면 교회들이 얼마나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울의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종적인 분리가 있지만, 복음의 비밀 또한 여전히 동일합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한 몸에 참여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들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의 비전

계시록에 담겨 있는 사도 요한의 비전만큼 교회에 대한 그림이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곳도 없을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교회에 대한 비전입니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교회가 항상 시선을 고정시켜야 하고 추구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매혹적인 그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간단하지만 심오하고, 충격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왜 이 지상 교회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인종간의 벽을 넘어 하나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많은 핑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그레이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이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이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 그레이스 교회는 이미 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를 알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보여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이 우리의 하나됨을 볼 것이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안디옥 교회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살아낼 것입니다.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에게 보여주신 영광스러운 비전을 실현하고자 애쓰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역사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그 능력을 따라, 교회를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십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